“모모야마 시대”
시대 구분의 하나. 16 세기 후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했던 20 년을 말한다. 미술사에서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초기를 포함한 중세에서 근세로의 과도기로서 중요한 시기이다. 특히 호장한 성곽 · 도노 저택 · 사찰의 조영과 그 내부를 장식한 벽화가 발달했다. 또한 민중의 삶을 보여주는 풍속화의 전개, 도예 · 칠공 · 염색 등 공예 기술의 진보도 주목할 만하다.
“카노 미츠노부”
모모야마 시대의 화단을 견인한 카노 에이토쿠 (1543-1590 년)의 적자. 부친 에이토쿠와 함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며 많은 작품 활동을 했으나 많은 작품이 손실되었다. 그 중에서 미이데라 간가쿠인캬쿠덴의 작품은 미쓰노부의 작풍을 알 수 있는 대표작이다. (1565-1608 년)
“오다 노부나가”
전국 시대를 대표하는 무장. 미노 출신으로, 천하 통일을 꿈꾸며, 에이로쿠 11년(1568) 9월, 무로마치 장군가의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의 길에 들었다. 교토에 입경하기 전 9월 24일, 미이데라에 진을 치고, 광정원을 요시아키의 숙소로 충당하고, 자신은 극악원으로 들어갔다. 그 후는 오미에 아즈치성을 짓고 제국 평정에 들어갔지만, 가신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모반(혼노지의 변)으로 인해 천하를 손에 쥐려던 꿈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1534-158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무장.오다 노부나가를 섬겼으며, 덴쇼 10 년 (1582)의 혼노지 변으로 노부나가가 죽자 일찌감치 후계자로 나서 적대 세력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했다. 덴쇼 11 년 (1583)부터 패권을 과시하기 위해 5층 8중의 천수각이 딸린 오사카성 건축에 착수했다. 호타이코로 불리던 그의 시대는 다도와 가노파의 회화로 대표되는 호화로운 모모야마 문화가 개화했다.
미이데라와의 관계는 대체로 양호했지만 말년, 분로쿠 4 년 (1595), 갑자기 사찰 몰수령을 내렸다. 미이데라는 게이초 3 년 (1598) 8 월 그의 사망 이후 히데요시의 정실 기타노만도코로가 재흥했다.
“카노 에이토쿠”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한 새로운 회화 양식을 개화 시켜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청으로 아즈치성과 주라쿠다이, 오사카성에서 그 수완을 발휘했다. 에이토쿠는 다섯 섭정 가문의 근위가의 당주·마에히사와 인연이 깊고, 그 친동생 준산구 도초가 미이데라 총무 승려였던 것으로 에이토쿠의 장남·카노 미츠노부가 간가쿠인 객전의 장벽화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543-1590년)
“아즈치성”
오다 노부나가가 덴쇼 4년(1576)부터 약 3년에 걸쳐 현재의 시가현 오미 하치만 시의 비와코가 바라보이는 아즈치 산 일대에 축성했다. 일본 최초의 대형 천수(천주)를 지닌 호장웅위한 획기적인 성곽으로, 내부는 가노 에이토쿠가 그린 호화로운 장벽화로 장식되는 등 노부나가의 독창성이 발휘된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를 대표하는 성곽으로 그 위용을 자랑했다고 한다. 덴쇼 10년(1582)의 혼노지의 변으로 인해 노부나가의 사후에 소실되었으며, 현재 성터는 국가 지정 특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