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무장.오다 노부나가를 섬겼으며, 덴쇼 10 년 (1582)의 혼노지 변으로 노부나가가 죽자 일찌감치 후계자로 나서 적대 세력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했다. 덴쇼 11 년 (1583)부터 패권을 과시하기 위해 5층 8중의 천수각이 딸린 오사카성 건축에 착수했다. 호타이코로 불리던 그의 시대는 다도와 가노파의 회화로 대표되는 호화로운 모모야마 문화가 개화했다.
미이데라와의 관계는 대체로 양호했지만 말년, 분로쿠 4 년 (1595), 갑자기 사찰 몰수령을 내렸다. 미이데라는 게이초 3 년 (1598) 8 월 그의 사망 이후 히데요시의 정실 기타노만도코로가 재흥했다.
“겟쇼(재산몰수)”
(영주가 없는 토지의 뜻) 가마쿠라 · 무로마치 시대에 영주의 죄과 등으로 막부에 몰수되어 새로운 영주가 정해지지 않는 영지. 몰수지. 또는 영지의 기타 재산을 몰수하는 것.
“모리 데루모토”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무장. 모토나리의 손자. 다카모토의 아들. 처음에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노부나가에 대항했지만, 혼노지의 변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화친, 후에 오대 다이묘의 하나가 되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서군의 주장으로 싸웠으며, 전후 스오노쿠니 · 나가토노쿠니 두 나라로 감봉되었다. (1553-1625)
“쇼인즈쿠리”
헤이안 시대의 귀족 사회에서 만들어진 신덴즈쿠리(침전조) 양식이 사회 변화와 함께 발전해 가마쿠라 시대 이후에 지배 무사의 생활 스타일, 특히 접객 의례의 필요성 대응하고, 중국에서 전래된 선종 건축의 영향과 함께 점차 무가 사회의 저택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가노 미쓰노부”
모모야마 시대의 화단을 견인한 카노 에이토쿠 (1543-1590 년)의 적자. 부친 에이토쿠와 함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기며 많은 작품 활동을 했으나 많은 작품이 손실되었다. 그 중에서 미이데라 간가쿠인캬쿠덴의 작품은 미쓰노부의 작풍을 알 수 있는 대표작이다. (1565-1608 년)